고쳐 쓴 한국 근대사
역사에 대한 책을 종종 읽긴 했지만 주로 삼국시대, 가까워봤자 조선시대가 전부였다. 지금의 한국의 모습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근대 역사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고, 그래도 정상적인 근대사 수업을 들은 고등학생 정도의 지식은 갖추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부: 양반 지배체제의 와해와 민중세계의 성장, 2부: 외세 침략과 국민국가 수립의 실패 로 이루어져있다. 1부에선 조금씩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하지만 한계가 엿보였던 조선 후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2부에선 근대화에 실패한 조선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가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은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근대화에 가까이 있었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웠던 것 뿐이지, 객관적으로는 아직도 봉건주의 사회를 한참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사회적으로는 양반 지배체제가 어느 정도 약화되고 양반의 권위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양반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지 (돈으로 신분을 사는 등의 방법으로), 평등 사상이 퍼져나갔기 때문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도 상업을 천시해서 거의 발전하지 못했던 조선 초기, 중기와는 다르게 상업이 조금씩 부흥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공업이나 산업이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거의 물물교환을 하던 이전과 다르게 조금씩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했지만, 정부가 안정적으로 화폐를 유통시키지 못하여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화폐질서가 교란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문화적으로는 문호를 개방하고 서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는 있었지만 기득권층이 권력 유지 욕심으로 쇄국 정책을 고수한 탓에 서양의 발달한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 후기의 모습은 비합리적이고 효율성이 낮았던 조선의 봉건적인 제도에 대한 불만이 민중 세계에서는 퍼져나갔고, 조금씩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긴 했지만 곧 닥쳐올 외세의 침입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근대 속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근대화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잡지 못한 것이다. 실학자들이 외국의 학문을 받아들이려 했고, 농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하지만 실학자들은 기성 정치 세력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정치세력화하지 못했다. 농민운동은 어느 정도 힘은 가지고 있었지만, 새로운 정치 체제, 국가에 대한 인식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였고 자신들의 삶을 힘들게 한 지방 관리 등을 처단하는 정도 밖에 해내지 못해, 산발적인 저항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옆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더 아쉬운 대목이다. 일본도 근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근대화를 추진한 쪽이 반대하는 쪽을 이길 수 있을 만한 힘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방 세력들, 지배층이 전부 선비, 양반들이여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데 반해, 일본은 지방 세력들이 제각각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중앙 집권 체제가 어느 정도 약화되어 있었던 것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선의 문호 개방후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좀 더 한숨이 나오는데,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열강들의 침략을 제대로 방비하기에는 조선의 국가적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아보인다. 나름대로 조선도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면도 있다.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이 그러한 예시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들도 방법론적으로는 외세의 힘에 기대어 개혁을 하려고 한 한계점, 사상적으로는 현대적 공화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군주제에 머물러 있으려 했던 한계점이 있다. 또한 일본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던 개혁이었던만큼 실제로 일본의 조선 진출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개혁이었던 점도 없지않아 있었다.
또한 민족 자본 형성의 실패는 여러가지 요인에 의한 것이었는데, 열강들과의 불평등조약, 열강들의 조선 토지, 지하자원, 철도부설권 등의 침탈, 화폐개혁의 실패(정부의 무능력과 일본 화폐의 유입등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등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대한제국 의 힘든 상황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많은 민족운동이 있었는데, 갑오 농민전쟁, 독립협회 운동, 의병전쟁, 애국계몽운동 등이 있었다.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전쟁은 주로 농민층, 서민층들의 무력 항쟁이었고, 독립협회, 애국계몽운동은 지식인들 층의 운동이었다. 독립협회, 애국계몽운동 등은 의병전쟁과 같은 무력항쟁과 연결되지 못해 지식인 층과 서민층 간의 통일된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국계몽운동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모토아래, 국민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활발한 교육운동을 비롯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다.
조선 후기 개항 후부터 대한제국의 한일합방때까지 일본은 차근차근 조선을 삼키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조선은 충분한 대비가 되지 않아있었고 안타깝게도 500년 사직을 문닫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는 좋은 방향으로 조금 가는 데에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지도층의 몇 번의 잘못된 결정, 잘못된 판단으로도 쉽게 일어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었겠지만 국민들의 시대적 요구로부터 눈을 닫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고만 했던 지도층의 잘못된 판단은 어떤 식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것 같다.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만으로도 나라가 좌지우지 될 수 있는 봉건주의적 군주제, 세도정치의 문제점을 여실히 볼 수 있었고, 속도는 좀 느리고 비효율적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얼마전에 읽었던 '제국:유럽 변방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어떻게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는가'에서의 영국과 조선을 비교해 보면서, 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 기술 혁신, 개방 등이 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