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개정판)(개정판 2판)
미야베 미유키는 재밌는 글을 쓴다. 화차는 내가 읽은 세 번째 미야베 미유키 작품이다 (이전에 읽은 두개는 '모방범'과 '낙원'). 모방범도 그렇고 화차도 그렇고 독자들에게 중간 즈음부터 범인을 알려주는데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며 진행시켜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화차는 1992년 출판된 작품이다. 신용카드 사용이 점점 대중화 되고 그로인해 생기는 사회문제들을 엿볼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당시 별다른 자격 검사도 하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여 제대로 된 경제 관념도 없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 돈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카드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수많은 빚을 지고 한 카드의 빚을 다른 카드의 빚으로 막는 돌려막기를 하다가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가족이 자살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는 뉴스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뉴스였다.
화차는 그런 사회적인 배경 속에서 발생한 한 사건, 신용카드로 인한 빚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 버린 한 여자의 범죄를 추적해가는 내용이다. 주인공 '혼마'의 부인쪽 친척에서부터 사라진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간단해 보이는 부탁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혼마는 예상치 못한 발견들을 하게된다. 사라진 약혼녀의 신분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신분을 도둑질 한 것이었고, 혼마는 진짜 쇼코와 가짜 쇼코의 과거를 더듬어 나가며 사건의 진상에 도달해 나간다.
이 책을 보면서 두가지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작가가 의도했듯이, 신용카드로 인한 많은 개인파산자들, 관련 범죄 등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다. 지불을 나중으로 미루고 긁기만하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신용카드의 무서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 한번쯤 꼭 사고 싶은것, 급하게 사야하는 물건이 있지만 돈이 없다면, 신용카드를 이용해 '질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먼 앞날의 걱정이나 문제보다 눈 앞의 이익을 더 쫓아가기 때문에 그런일이 생길 것이다. 먼 미래의 일은 불확실하기도 하고 체감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 돈을 안내도 다음달에 갚기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얼마나 이겨내기 힘든 유혹일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카드 빚으로 죽고, 범죄를 저지르고,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고, 생활이 파탄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문제를 가볍게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남겨두기엔 심각성이 큰 것 같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자제력 부족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현명하게 소비를 하고 실수없이 살아가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해 경제적인 늪에 빠지게 된다. 누군가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책임을 지게 하되 그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그런 제도들이 꽤 있을 것도 같다. 개인파산 제도라던지, 신용불량자들이 빚을 갚아나가는 것을 도와주는 기관이라던지).
두번째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라는 것이 상당부분 서류 위의 문자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출생, 교육, 결혼, 가족관계, 이사, 이혼, 사망 등 개인의 대소사가 모두 서류로 기록되어진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명을 훔쳐 들키지만 않으면 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내 기록을 지워 버린다면 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느낌이 묘하다고 해야하나,, 무튼 그렇다.
이것저것 생각이 들랑말랑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만 그건 둘째치고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첫번째 덕목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은 그 점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