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0일 토요일

some nights - fun.



빌보드 차트 구경하다가 건진 앨범. 인디밴드라고 하던데 노래가 괜찮다.
처음 느낌은 살짝 MIKA노래를 듣는 듣한 느낌? MIKA을 워낙 좋아해서인지, 여러번 듣게 된다.
확 꽂히는 킬링트랙은 없는 것 같은데, 몇 번 듣다보니 노래가 전체적으로 다 좋아서 자주 듣고 있는 앨범. MIKA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으려나 싶다.


We are young




Some nights


2012년 3월 1일 목요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상)(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1-1)(2판)

앞표지
범우사, 1997. 4. 30. - 496페이지
미국의 남북전쟁과 패전 그리고 재건시대의 조지아주를 배경으로 씌어진 방대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쟁에 의한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휩싸인 등장 인물들의 삶과 사랑과 죽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격심한 시련을 겪으며 살아 남기 위해 투쟁하는 그 처절한 모습들은 이 소설의 긴장감을 더해 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가공적이거나 비현실적 인물들이 아니다. 바로 그 시대에 그러한 곳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생각하고 생존했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물들이다. 이 소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유난히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여주인공 스칼렛의 생존 의지와 애슐리에 대한 헌신적이고도 야생적인 사랑, 그리고 냉소적인 실리주의자 버틀러와의 줄다리기는 이 소설에 흥미와 매력을 더해 준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국내외의 많은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금세기 미국문학의 금자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로도 우리와 친숙한 작품이다. -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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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 한 유명한 책인데, 분량이 만만치 않아 오랜 시간이 걸려 다 읽게 되었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는 그러한 사회에 적응해, 기회를 철저히 이용하여 성공한 사람의 위치에 오르는 사람이다. 그에 반해 애슐리 윌킨스는 과거의 세계를 버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1.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있다. 스칼렛이 애틀란타에서 태라로 피신해 온 뒤 어머니 엘렌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 그저 철없는 소녀였던 스칼렛은 돌아가신 엘렌을 대신해 그 모든 짐을 짊어질 각오를 한다. 그렇게 스칼렛은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어리기만 했던 스칼렛이 모든 고난을 짊어질 각오를 하고,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태라를 다시 일으킬 결심을 하는 장면은 스칼렛이라는 인물에 처음 호기심과 공감을 가지게하는 장면이었다. 그 당시 여자의 몸으로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일념으로, 여자로서 하면 안되었던 수많은 노동과 일들 (심지어 살인까지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칼렛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장면은 포기를 모르고 1000페이지 내내 질주하고 싸우는 스칼렛에 대한 복선이었다(...), 이렇게 일관된 성격을 끝까지 유지할 줄이야..)



2.
소설을 읽는 내내 스칼렛과 버틀러의 적응력과 처세능력, 독립심, 끈기 등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점점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삶의 방식으로 인해 잃게 되는 것들을 보면서 꼭 이것만이 좋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 친척, 사회적인 명예, 등의 인간적인 유대감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돈만을 향해 달려가던 스칼렛의 삶이 결국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이 더 들게 되었다. 물론, 나도 스칼렛과 애슐리 둘 중 어떤 방식을 택해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선택해야 한다면 스칼렛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겠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면서 주위도 돌아보며 가야하지 않을까, 그래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선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스칼렛은 돈을 벌기 위해, 북부의 지배계층에게 협력하였고 그로 인해 변절자라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처음엔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금의 곤경을 벗어나야, 나중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또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이라면 일제시대에 일본에 협력해 우리나라를 배반했던 친일파들도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생각해보니, 스칼렛은 멜라니가 있었기 때문에 (또, 버틀러가 있었기 때문에) 북부가 조지아에서 권력을 잃게 된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이지, 만약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변절자'인 스칼렛은 이루었던 모든 것을 잃고 죽은 듯이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에 적응을 해 나가며 최선을 다하고 죽을 듯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넘지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을 어기게 된다면, 주위사람이 나를 전부 떠나가게 되고, 사람을 잃게 된다면 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 될 것이다.


3.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하나 눈에 띄었던 것은 생생한 시대 묘사이다.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쟁 전의 남부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족한 삶의 기운이 느껴졌고 전쟁 뒤의 빈곤, 처절함 같은 것도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예제도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약간 인간적인 면도 있었다는 것 (물론 남부출신의 작가가 쓴 것이라 어느 정도 편견이 있을 수 도 있겠다만..), KKK단의 유래라던지, 그 시대의 생활과 사고방식등을 눈 앞에 있는 것 처럼 볼 수 있었다. 소설로서의 재미와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주는 소설이었다.


4.
스칼렛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비극적인 결말에 읽고 난 뒤의 마음이 착잡하다. 소설을 통틀어 완벽하다 싶을 만큼 선하며, 모든 사람의 기둥이 되주었던 멜라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픈 감정이 결론 부분을 내내 지배한다.  애슐리를 향한 삐뚤어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칼렛의 사랑이 비극을 불러온 것 같다. 레트 버틀러의 스칼렛을 향한 그 열렬하고 헌신적인 사랑도 식어버렸고, 애슐리도 상처만을 가지게 되었다. 멜라니는 끝까지 그녀만의 선한 믿음 속에서 죽게 되었으니 그나마 가장 행복하다면 행복하다 할 수도 있겠다. 스칼렛은 이제야 자신이 레트 버틀러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버틀러는 이미 스칼렛을 완전히 떠나보낸 것 같다. 버틀러의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소' 이 한마디가 사랑도 원망도 남지 않은 그의 텅빈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스칼렛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그의 사랑을 되찾을 결심을 하며 소설이 끝났다.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집착하는 스칼렛의 성격, 그것에도 버틀러는 지쳐버렸기 때문에 나는 둘이 다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